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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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김부장과 중국인 王대리
최송화 2016-11-01

한국인 김부장과 중국인 王대리


‘하급의 군주는 자신의 능력을 다하고,
중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다하게 하고,
상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다하게 한다’
(下君尽己之能,中君尽人之力,上君尽人之智).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의 八經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퍼실리테이션 기술이 이 시대의 리더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으로 부각되고 있는 오늘을 살면서 수 천년 전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 역시 집단지성을 이끄는 현명한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구성원들의 소통을 촉진하여 최적의 방안을 찾고 실행력을 높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다국적기업의 경쟁이 치열한 중국시장에서 현지 직원들과 함께 성과를 내기 위해 고심분투하는 주재원들은 얼마나 소통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될까요?   

필자는 중국인으로서 오픈타이드 차이나(現 제일펑타이) 근무 시절, 김부장과 왕대리의 소통 장애를 안타깝게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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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은 유교사상이 깊게 뿌리 박힌 같은 동양권문화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강한 집단주의 문화인 반면, 중국은 개인주의 성향이 아주 강합니다.

김부장은 왕대리가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는 것을 아니꼽게 생각하며, 잔업이 있으면 같이 야근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왕대리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단에 대한 충성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왕대리는 대충 마무리하고 매정하게 퇴근합니다. 또한 왕대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김부장은 야근을 해도 기사 딸린 차량이 있고, 여건이 좋은 쾌적한 집에서 살기에 이튿날 정시에 출근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는 버스로 한두시간 걸려서 집에 도착하고, 샤워시설도 제대로 없는 월셋방에 살기에 야근을 하면 다음날 9시 출근이 너무 힘듭니다.” 그렇지만 김부장은 업무에 매진하지 않는 왕대리에게 화가 날 뿐, 왕대리와 소통해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간만에 부서 단합을 위해 김부장이 회식을 제안하면, 왕대리는 친구와 선약이 있고, 장과장은 와이프랑 선약이 있고, 쑈우쮠은 미용실에 다녀와야 한답니다. 상사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나의 스케쥴이 더 우선인 것이지요. 상사의 부름을 거역하지 못하고 회식자리에 가는 한국의 착한 부하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을 지닌 것입니다.


왕대리의 업무계획서를 보면, 깨알 같은 문자에 숫자는 보이지 않고,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김부장은 다시 쓰라고 고함을 지르고, 왕대리는 그런 상사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중국은 과거 오랜 기간 계획경제 하에 고객지향적인 마인드가 전무했고, 그 폐단이 아직도 다양한 영역에서 표출되고 있습니다. 왕대리가 김부장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김부장이 원하는 계획서를 쓰려고 노력했다면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문화적인 차이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출근시간이 다 됐는데, 왕대리가 전화로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안좋아서 하루 병가를 내겠다고 합니다. 할일이 많은 김부장은 속이 터집니다. 혹독한 군복무 경험이 있는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아무리 아파도 일단 회사에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한국인 동료가 여직원 옷차림에 대해 잠옷을 입고 나왔다고 말하면서 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농담인 듯 한 얘기지만, 다른 사람의 옷차림과 사생활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중국사람들에게는 큰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있는 구성원들과 일하는 주재원들은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스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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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가 목격한 한국기업의 업무회의는 대부분 지시와 훈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유능한 현지 직원은 소통 방법을 모르는 리더와 강압적인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련없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고객사의 회의에 참석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점장들이 돌아가면서 업무실적을 보고하고, 다음 이어지는 시간은 높으신 리더분의 고함소리만 들렸습니다. 문제점을 이야기해도 경청하지 않습니다. 해결책에 대한 참석자들의 의견도 구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경영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윽박지릅니다. 이런 회의가 반복되면 누가 리더앞에서 속마음을 얘기하고 진정으로 회사를 위해 일할까요? 고질적인 문제는 누적되고, 구성원들은 사리만 챙기는 병든 조직이 될 것입니다.


실무자들이 어렵게 모인 회의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논의하고 다같이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실행계획을 짠다면 바로 성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에 익숙한 리더부터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을 이끌어내는 퍼실리테이터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한국과 달리 리더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인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발표하고 자기 주장을 펼치는 중국의 조직문화에서 퍼실리테이티브 리더십은 더욱 그 가치를 발휘할 것입니다.


김부장님, 점심시간에 한국동료만 불러서 밥먹지 말고, 왕대리 장과장과 식사하시면서 소통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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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피플 컨설팅  최송화 수석컨설턴트

                                                                                                                      (sallychoi200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