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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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실리테이터의 결혼식 주례
정혜선 2016-12-14

퍼실리테이터의 결혼식 주례


어제 생애 첫 주례를 섰다. 주례를 한다고 해야 하나, 주례를 본다고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는데 하고 나니 ‘선다’는 것이 맞다 싶다. 짧긴 해도 결혼식 내내 서 있었으니 말이다.
신부는 내가 십수년 전 출강한 교육대학원의 제자였다. 회사원으로서 학업을 병행하는 상황이었고, 그 인연으로 사업 파트너로서도 관계가 있었으며 신랑과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두 달 전쯤 연락이 왔었다. 결혼을 하게 되었노라고. 주례를 맡아주기를 바란다고. 신랑과 신부를 다 아는 사람이 주례서는 게 좋겠다고 의논을 했단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주례를 서게 된 것이다. 얼떨결에 그러마고 약속하고서 충분할 것같던 날들은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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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사를 준비하다 보니 두 사람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신부를 처음 만난 때가 언제던가? 두 사람이 결혼에 대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등 단순한 숫자 질문으로부터 심오한 인생관에 대한 질문까지 뭘 좀 알아야만 주례사를 쓸 것 같았다.
고객사 대상 워크샵의 제안서 단계와 같은 주례사 초안을 작성하여 두 사람이 근무하는 회사로 방문, 우선 읽어 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워크샵을 위한 sensing meeting 단계와 같은 인터뷰를 했다.

• 우리가 언제 만났지요?
• 두 사람은 언제 어떻게 만났어요?
• 긴 시간 사귀다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 결혼에 대한 바램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주례의 입을 빌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질문이 거듭될 때마다 두 사람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주례인 나와의 관계로부터 두 사람의 과거 모습, 그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 그들의 현재 이야기, 회사 운영과 관련된 이야기, 미래 이야기 등 한 시간 정도 예정했던 미팅은 두 시간을 넘어서 점심까지 이어졌다. 얼만큼 알아야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만 주례사를 쓸 정도의 자료 수집은 된 것 같았다.


이제 이 두사람만을 위한 주례사를 써야 한다. 요구 분석을 반영하여 설계를 하는 단계다.
나의 역할은 그들의 결혼식 전체를 생각하면 극히 일부지만 내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전체를 빛바래게 할 수도 있다. 결혼식을 빛바래게 만든다면 앞으로 결혼 생활이 빛바랠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기에 내 몫을 제대로 해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주례를 서고 난 지금은 더욱 주례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결혼식의 처음부터 끝나고 사진을 찍는 순간까지 한 자리를 지키는 중요한 사람 중 하나가 사회자요, 다른 하나가 주례 자리였던 것이다. 다른 때는 그러려니 하며 흘려 들었던 혼인서약서부터 성혼선언문과 주례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순서에 주례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뭐든 일방적인 연설에 거부반응이 있는 나는 사이사이 하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하였다. 예컨대, 이 두 사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 해주겠는가? 식 질문 말이다. 두어 차례 시도했으나 하객들의 반응은 미미했다. 시도한 것만으로 스스로에게 별점을 줘본다.
Exit Survey 를 하는 대신, 주례가 들어 있는 사진 한 장만 찍고 나오려던 애초 계획을 바꾸어 2부 순서까지 자리 지키며 식사도 하고 인사도 받으며 나름대로 신랑신부와 함께 하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프로세스 전문가로서의 퍼실리테이션이 새로운 영역인 주례 역할에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사례를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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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파트너
인피플 컨설팅
(nowhr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