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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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준비없이 어설프게 진행된 집단적 의사결정은 위험하다
관리자 2019-10-04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그룹의사결정의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한 이슈를 공론화(公論化)하거나, 지역의 현안문제를 주민 스스로가 논의∙해결하려는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하거나, 기업 등 조직의 문제해결에 있어서도 개인이 아닌 조직의 관점에서 바텀업(Bottom-up)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이제 새롭지 않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개인이 아닌 다수가 모여 집단지성의 힘을 빌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수가 모여서 결정한 것이 혼자 내린 결론보다 질이 높지 않고, 실효성도 적은 것 같다며, ‘과연 이 방법이 예산과 시간을 들여서까지 할 일인가’ 의구심을 갖고 물어오는 분들이 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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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재판을 영화화한 ‘배심원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영화 ‘배심원들’은 생애 처음 누군가의 죄를 심판해야 하는 배심원들과 사상 처음으로 일반인들과 재판을 함께 해야 하는 재판부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통해 의사결정과 관련해서 두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첫째, 모두가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경우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소수의 의사결정권자를 잘 뽑을 수 있을까? 
영화 초반에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인 8명의 보통사람들이 배심원단으로 선정되는데, 이 방식이 미니공중방식이다. ‘미니공중(minipublic)’은 통계 기법을 활용 전체 인구의 소우주(microcosm)에 해당하는 샘플을 추출하여 시민참여단을 구성하여 전체를 대표하게 하는데, 이 시민단은 특정한 현안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만 참여하고, 심사숙고하여 권고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배심원들의 면면을 보면 만학도 법대생, 요양보호사 할머니, 무명배우, 전업주부, 백수 등 평범하고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엑스트라 같다. 형식적으로 국민이 참여하고 있지만, 뭔가 이 사안에 대해 관심도 경험도 없어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만 같은 모습이다.
영화는 좀 더 특수 상황이지만, 사회의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때마다 이렇게 참여단을 구성한다면 우리가 이들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고, 이들이 내린 결정에 동의할 수 있을까? 이들을 대표로 인정할 수 있으려면 어떤 것들이 갖춰져야 할까?

참가자들에게 그 사안에 대해 유의미한 정보와 논점을 제공하여 이해도를 높이고, 숙고할 시간과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할 것이다. 참가자들의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문가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언젠가 우리를 대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를 대비해서 개별 참여자가 토론 역량과 경험을 갖추도록 훈련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둘째, 과연 참가자가 토의 과정에서 정보를 인지하면서 진정성있는 의견교환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속 배심원들의 모습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그냥 하자는 사람, 대충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 깊게 생각하느라 정확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 등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들이다. 인지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견해와 상충하는 정보나 주장을 접할 때 그 정보의 타당성이나 주장의 설득력 여부와 관계없이 기존의 입장이나 편견을 강화하거나, 집단 구성원들 및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비춰지고 싶어하는데, 이런 심리적 방향이 극단적인 주장과 만나 기울어진 운동장이 한쪽으로 더욱 기우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이미 유죄로 결정되었는데, 새로운 증거가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거나, 배심원 중 한 명이 귀찮은 듯 대세를 따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토론의 공간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 중 하나는 말투, 복장, 외모, 성별 등의 외적인 요인이 주장 자체의 설득력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심하게 구사하는 어리숙한 외모의 노년 여성의 주장보다 깔끔한 옷차림과 차분한 어투를 가진 중년 남성의 주장에 사람들이 더 쉽게 설득당할 수 있다.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토론의 공간에서 이성적 논증, 논리적 일관성, 증거에 기반한 단계적 주장 등의 말하기와 듣기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과 교육수준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떄문에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영화에서도 재판장의 권위에 압도되거나, 나름 엘리트인 대기업 비서실장의 이력만 보고도 뭔가 좋은 판단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집단적 의사결정의 장을 준비할 때, 참가자들이 선입견이나 비합리적 동기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실관계에 충실하고 성찰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사실과 주장을 구분해서 정리해주어야 한다. 또 참가자들에게 발언의 기회가 공정하고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구조화하고, 능숙하게 토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참가자들의 견해 변화가 상당히 유의미한 수준이 되도록 끌어올릴 수 있다.


“150명이 3시간 동안 의사결정 회의를 하고자 합니다. 워크숍은 일주일 뒤 입니다. 워크숍 진행을 해주실 수 있나요?” 이렇게 문의를 주신다면 그룹의사결정에 대해 아직은 이해가 적은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의사결정이 잘 되기까지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함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충분한 준비없이 어설프게 진행된다면 결론의 질, 수용성, 정당성의 큰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


인피플 컨설팅 책임컨설턴트 김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