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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퍼실리테이션으로 쿠르드의 교육시스템을 세우다-1편
관리자 2015-10-13

한국의 퍼실리테이션으로 쿠르드의 교육시스템을 세우다-1편

2015년 8월 인피플 컨설팅의 퍼실리테이터 정혜선 파트너(교육공학 박사)는 한국 공무원 교육 훈련 시스템, 교육 운영 경험과 Know-how 등을 전수하기 위해 쿠르드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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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헌법에 따라 자치권을 부여받은 쿠르드 자치정부(KRG. Kurdistan Regional Government)의 수도 아르빌(Erbil)에서 펼쳐지는 정헤선 박사의 퍼실리테이션 후기를 후기를 2회에 걸쳐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보통 쿠르드의 수도 아르빌에 갈 때 사우디아라비아나 두바이를 경유해서 가지만, 필자는 터키의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을 거쳐 아르빌에 갔다(쿠르드는 우리 정부에서 여행 방문 제한을 두는 지역이다. 만약 쿠르드를 가려고 한다면, 외교부의 특별 방문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터키까지 12시간이 걸렸고, 터키에서 아르빌까지 2시간이 소요되었다. 터키 공항에서 6시간을 기다렸기 때문에 총20시간에 걸쳐 아르빌에 현지 시각 토요일 새벽 3시경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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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에 걸쳐 도착한 쿠르드의 수도 아르빌에서 가장 먼저 맞이해 준 것은 무서운 더위(무더위)였다. 우리나라는 섭씨 30도가 넘으면 무덥다고 난리지만, 아르빌은 차원이 다르다. 아르빌에서는 조금 덥다 하면 47도이고, 좀 살만하다 하면 43도로서 사람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점이 45도이다. 섭씨 47도의 더위, 경험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아르빌에서는 에어컨 없이 살 수 없고, 건물 밖으로 함부로 나갈 수도 없다. 더욱이 아르빌에는 지하철,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은 없고, 교통수단은 택시와 자가용 밖에 없다. 특히 이라크 원유 매장량의 3%를 차지하는 아르빌은 석유만 풍족할 뿐, 제조업 생산기반이 전무하기 때문에 직업이 다양하지 않고 한 집에 공무원이 한 명쯤 있을 정도로 국민의 15%가 공무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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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꼬박 날아서 토요일 새벽에 도착했지만, 새로운 곳에 왔다는 흥분 탓인지 숙소에 도착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또한 한국에서 못다 한 워크숍 준비를 아르빌에 도착한 토요일과 일요일에 마무리하려 했던 생각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쿠르드에 도착해서 워크숍을 준비하려 했던 생각이 잘못이었고, 쿠르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왔다는 후회를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쿠르드에서는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일하고, 금요일과 토요일이 주말이고 휴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일요일이 이곳 아르빌에서는 월요일인 셈이다. 그리고 근무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이다. 중간에 잠시 커피 브레이크를 하고 공식적인 점심시간은 없다. 연장 근무도 없고 야근이라는 것은 당연히 없다. 오후 2시 정도가 되면 퇴근 준비를 하고 2시 30분이 되면 사무실을 닫기 때문에 나와야 했다. 아니, 그들이 문을 닫고 퇴근할 수 있도록 나와 주어야 했다.

결국 사흘 연속 진행해야 할 워크숍 준비를 뒤로 하고, 아르빌이라는 신세계를 탐방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필자가 만난 아르빌 사람들은 점잖고 조용했다. 필자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함께 간 일행이 무리지어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왁자지껄 떠들었을 때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조용히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잊지 않을 정도로 친절했다. (거리에서 만난 아르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워크숍에서 만난 참가자들도 그랬다. 무엇이든 재미있어 하면서도 워크숍에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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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빌 탐방기는 여기까지다. 필자가 하루를 꼬박 세우고, 낯선 곳에서 하루를 지낸 뒤 다음날부터 사흘 연속 워크숍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나중에 지면이 허락한다면, 아르빌에서의 소소한 일상들을 좀 더 전해줄 것을 약속한다.


지금부터 필자가 왜 아르빌에 갔는지, 아르빌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현재 쿠르드 자치 정부(KRG)는 나라를 세우는 과정의 일환으로 공무원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한국 정부(국제교육진흥원(KOICA))의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쿠르드 아르빌에 간 것이다. ODA 프로젝트의 핵심은 쿠르드 자치정부가 공무원교육원 건물을 세우면 한국 정부가 쿠르드 공무원교육원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수립하고 인재를 채용하고 육성하는 HRM과 HRD를 제공함으로서 쿠르드 자치정부 전체의 인재를 육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프로젝트는 난생 처음이다. 남의 나라를 세우는데 관여하는 일이 어디 자주 있는 일이겠는가? 더욱이 필자가 이런 중차대한 일에 관여해서 역할을 하는 일이 일생에 얼마나 자주 있겠는가? 아니 앞으로 또 이런 일들이 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배우고 익힌 것이 그들에게는 대단한 노하우가 된다. 그들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우리를 신뢰하고, 의지한다. 이렇게 흥분되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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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밤을 세면서까지 워크숍을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워크숍 시작과 함께 ‘멘붕’이 왔다. 멘탈이 강한 나를 넉다운 시킨 것은 워크숍 첫 날 KIPA를 관장하고, 프로젝트의 수장인 기획부 국장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부르면 즉시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이후 미팅에서도 종종 그러했듯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그렇지만 제안서 발표나 비전 워크숍이 아니므로 수장이 없는 상태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워크숍 첫 날이고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선입견이 없으니 눈치 볼 일도 없을 것이라는 초긍정적 마인드를 끄집어 내면서 당황하지 않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다만, 히잡을 쓴 여인들, 연령대가 다양한 남정네들, 낯선 이국인들 앞이라 표정, 자세, 행동에서 무엇인가 짐작해서 지속적으로 엮어가는 퍼실리테이터로서 순발력을 발휘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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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워크숍의 주제는 심각하거나 아카데믹한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 워크숍은 한국 자문팀이 지금까지 해 온 작업과 앞으로 할 일을 소개하고 내용을 공유하면서 지금부터 일을 해나가야 할 KIPA 직원들 간 팀빌딩을 하며 공무원으로서 역할을 다지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리고 워크숍 참여자들의 특징은 모두 KIPA에서 교육을 기획, 운영 또는 강의, 교육 지원을 하는 소위 교육쟁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교육쟁이들을 대상으로 뭔가를 하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참가자들은 워크숍을 재미있어 했고, 매우 참여적이며 협조적이었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국가 건설이라는 공통된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쿠르드 족은 이라크, 터키, 이란 등에 흩어져 살다가 지난 2005년에 자치 정부를 세우면서 독일, 영국, 캐나다 등에서 살던 쿠르드인들이 정부의 부름을 받고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며 돌아왔다. 고국으로 돌아온 상당수의 해외파가 국가 건설과 발전을 위해 공무원으로 봉직하고 있다. 첫 번째 워크숍에 참가한 쿠르드 교육쟁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워크숍에는 영국에서 30년간 대학 교수직을 역임하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 자문위원이 참가했고, KIPA 원장도 있었다. 그리고 임용된지 두 달이 채 안된 신입사원이 있었고, 대학 졸업은 못했지만 다양한 자격증을 획득하고 KIPA의 운영을 총괄하는 인물 등 다양한 배경의 KIPA 직원들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다만, 퍼실리테이터 입장에서는 서로 배경이 다른 곳에서 살았고, 서로 특성이 다른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팀 빌딩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욱이 영어로 하면 쿠르드어로 통역을 하고, 아랍어로 통역을 해야 전체가 공유되는 언어적인 장벽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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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워크숍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전반적으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쳤다. 참가자들 중에 일부는 이런 식의 교육이 처음이었다고 했으며, 심지어 교육원의 교수님은 퍼실리테이션을 어디가서 배우면 되는지 묻기도 하는 등 워크숍이 끝나면서 참가자로부터 들은 소감 만을 놓고 보면, 매우 성공적인 퍼실리테이션이었다. 사흘 연속 진행되는 워크숍 중 불과 하루가 마무리되었을 뿐이었지만, 첫 번째 워크숍은 퍼실리테이터인 필자나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다음 워크숍을 기대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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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첫 번째 워크숍에서 참가자들 간에 서로의 업무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이 부족해 보인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필자의 아쉬움이 현실화되고 말았다. 두 번째 워크숍 시작 전에 자문 위원 Dr. Jamal의 문제 제기와 함께 긴급 미팅으로 워크숍은 발목을 잡히게 된 것이다. (2편에 계속…)

주) 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요청에 따라 지난 2013년 12월부터 KRG 기획부(Ministry of Planning)와 한국 정부의 공무원 교육훈련 시스템, 공무원 교육운영 경험과 know-how 전수를 통해 쿠르드 공무원교육원(KIPA)의 자율적 교육 운영과 역량 배양 및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3년 간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필자는 교수설계 체제팀의 일원으로 자문하고자 2015년 8월 7일~ 8월 23일 간 쿠르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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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파트너, 인피플 컨설팅
(nowhr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