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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퍼실리테이션으로 쿠르드의 교육시스템을 세우다-2편
관리자 2015-10-26

한국의 퍼실리테이션으로 쿠르드의 교육시스템을 세우다-2편


2015년 8월 인피플 컨설팅의 퍼실리테이터 정혜선 파트너(교육공학 박사)는 한국 공무원 교육 훈련 시스템, 교육 운영 경험과 Know-how 등을 전수하기 위해 쿠르드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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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헌법에 따라 자치권을 부여받은 쿠르드 자치정부(KRG. Kurdistan Regional Government)의 수도 아르빌(Erbil)에서 펼쳐지는 정헤선 박사의 두 번째 퍼실리테이션 후기를 전해 드립니다.

워크샵 이튿날이 되었다.
워크샵 첫날의 흥분과 행복감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둘째날에도 어떤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기대되었다.
서둘러서 아침 식사를 마쳤지만, 아르빌에서는 혼자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워크샵 장소에 쿠르드공무원교육원(KIPA)에서 제공해 준 버스를 타고 불과 1시간 전에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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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워크샵을 차분히 회고하고 둘째날 역시 성공적인 워크샵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동안 참가자 두 명이 왔다. 워크샵 참석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일터에 출근했다가 오기 때문에 워크샵 참석자들을 좀 더 기다려야 할 듯 했다.

워크샵 참석자들을 기다리는 동안 워크샵 첫날 갑작스럽게 참석하지 못했던 KIPA를 관장하는 MoP(Ministry of Planning) 국장이 잠시 보자며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왔다. 아마 차나 한잔 하면서 전날의 불참을 사과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된 워크샵을 축하하면서 안면을 트고자 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기관에 강의하러 가면, 가끔 기관장이 강사에게 차 한 잔 대접한다고 강의 전에 부르는 경우가 있다. 강사가 교육생 보다 먼저 강의실에 가 있으면, 위신이 없어보이고, 수강생들이 싫어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MoP 국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공기를 느꼈다. MoP 국장실에는 차를 나르는 건장한 남성 직원 서너 명 정도가 보였고, 여성들의 경우 꽁꽁 숨어서 일하라는 업무 매뉴얼이 따로 있나 싶을 정도로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일하는 전문가 외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광경이었다.
MoP 국장, 그의 통역이자 홍보실장과 함께 전일 워크샵 참가자들의 반 이상이 앉아 있었다. 얼핏 보더라도 MoP 국장실에는 매우 영향력이 큰 분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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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30여년간 교수직을 가졌던 Dr. Jamal, 영문학 박사 과정에 있던 사람, 외래교수로서 KIPA의 faculty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 KIPA 원장, KIPA의 교육을 기획,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람 등 앞으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우리 팀과 관계하면서 함께 일해야 할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MoP 국장실에서 마주한 그분들의 표정은 전일 워크숍에서 봤던 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왜 이분들이 워크샵 장소가 아닌 이곳에 모여있는 것일까? 워크샵 준비에 여념이 없어야 할 시간에 이렇게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는지 전혀 짐작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MoP 국장과의 첫 대면에서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미팅의 목적도 모르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황당한 상황이 상상되는가?


필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별다른 인사도 없이 곧바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교수설계팀과 이번 워크샵의 목적은 무엇이며, 워크샵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전일 워크샵 중간에 Dr. Jamal이 제기했던 ‘워크샵 참석자 대상을 제대로 선정했냐?’라는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전일 워크샵 참가자들 중 대부분은 그 교육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건 무슨 소리? 나라의 부름을 받고 온 엘리트 자문들이 웬 자국인들에 대한 비하적인 발언?’ Dr. Jamal의 경우 통계학을 전공하여 영국에서 교수직을 한 인물로서 다른 분야의 학문에도 거의 통달한 분이다. 흰머리를 한 할아버지의 은은한 미소의 첫 인상이 너무 좋았던 탓인지 Dr. Jamal에 대한 실망감이 무척 컸다. 물론 그가 왜 그런 문제를 제기했는지 안다. 한 마디로 ‘헛힘 쓰지 마라! 너의 열성(熱誠)은 알지만 번지수가 잘못되었다’는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필자에 대한 호의가 아니며, 문제 제기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필자는 워크샵이 계획했던대로 진행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시간은 이미 워크샵 시작 시간을 넘기고 있었고 다른 참가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듯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안절부절하는 마음에 좀 들리던 영어마저 오리무중 잘 들리지도 않는다.


필자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워크샵 1시간 전에 호출한 MoP 국장과 국장실에 모인 사람들을 원망하기 보다 순발력 있는 판단과 빠른 의사결정으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필자는 아르빌에 교수설계팀의 리더이자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간 것이다. 다만, 예상치 못한 문제 제기는 두 가지 역할의 본질적인 대립 속에서 어느 한 쪽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했다. 퍼실리테이터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워크샵 장소로 최대한 빠른 시간 내 돌아가야 한다. 물론 워크샵 장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리스크는 있다. 워크샵 시작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퍼실리테이터와 핵심 인물들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워크샵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 어떻게 할지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차피 워크샵은 어려운 만큼 교수설계팀의 리더로서 MoP 국장실에서 워크샵은 깨끗이 잊은 채 차분히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결단을 내렸다.
(물론 아직도 그때의 결정이 옳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아주 나쁘지 않았고,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안할 뿐이다.)
필자는 MoP 국장실에 모인 분들에게 워크숍의 배경과 목적을 설명하고, 워크샵을 기다리는 참가자들을 위해서 늦었지만 당장 워크숍을 진행하러 가겠다고 선언했다. 워크샵은 MoP 국장실에 있지 않은 참가자들과의 선약이고, 만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은 필자를 믿고 있기에 워크샵 진행을 위해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MoP 국장은 영어가 아닌 쿠르드어로 소통하므로 통역 이전에 필자의 말을 알아들은 Dr. Jamal이 ‘대부분 참가자들은 여기에 있으니 갈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필자는 오히려 지위가 낮고 그래서 힘없고 영문을 모르고 있을 나머지 참가자들이 워크샵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한시가 급했다. 그리고 내심 화도 났다.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교육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는 태도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MoP 국장실에서의 회의는 필자 이외에 6명이나 되는 교수설계팀원들이 맡아서 해도 되는 일이고, 워크샵은 퍼실리테이터인 필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워크샵은 참가자들과의 먼저 약속했던 일이었고 MoP 국장실에서의 미팅은 난데없는 일이었다. 이쯤 되면 필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백하지 않은가?
필자는 MoP 국장실에서의 미팅을 교수설계팀 팀원들에게 맡기고, 워크샵 시작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MoP 국장실에서 나왔다.


필자가 MoP 국장실에서 과감하게 나왔지만, 정작 워크샵을 진행하러 도착한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워크샵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각자 다시 자신들의 근무지로 돌아간 참석자들을 재소집했다. 필자가 치러야 했던 심리적 비용과 관계없이 ‘왜 오라가라 하냐’는 표정으로 들어오는 참가자들을 반갑고 미안한 마음으로 맞이했다. 워크샵 장소의 온도는 26도 정도로 유지되지만, 문 하나만 나서면 복도만 해도 43~47도나 되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워크숍 장소로 다시 오는 일이라도 보통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전날 보다 반 이상 줄어든 참가자들-MoP 국장실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을 대상으로 김빠진 워크샵을 진행하게 되었다.


워크샵 전에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탓에 필자의 영어가 제대로 될리 없었고, 워크샵에 영어를 잘 하던 핵심 인물들이 참가하지 않으면서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지속적으로 통역을 해야 되는 등 워크샵의 진행은 전날 보다 원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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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참가자들과 교수설계팀 팀원들이 회의를 마치고 합류하면서 워크샵은 정상화될 수 있었고, 당초 계획했던 대로 마무리되었다.

퍼실리테이션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변수와 요소들이 제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종합 예술’이라는 점을 절감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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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기까지 열흘 남짓 기간 동안 MoP 국장실에서 필자를 당혹시켰던 핵심인물들과 거의 매일 회의를 하면서 업무 협의를 했고, 문화교류 등을 통해 라포(Rapport)를 형성했다.
다행스럽게 그날 필자의 행동이 그들에게 열정-Dr. Jamal이 Passion이라고 표현함-으로 비춰졌고, 졸지에 MoP 국장실에 남겨진 교수설계팀에게는 리더로서 순발력 있는 결단으로 비쳐지는 등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퍼실리테이터로서나 팀 리더로서나 대과(大過) 없이 치러냈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날의 행보를 뒤집어 보면 순식간에 완전 반대의 결론에 이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팀 리더로서는 문제 상황을 팀원들에게 맡기고 자리를 뜬 무책임한 리더로 비쳐질 수 있고, 퍼실리테이터로서는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이유야 어떻든 핵심 참가자들, 의사결정권자 등을 참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IS가 판치는 위험한 이라크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왔고, 돌발 상황이 만연했던 위기의 워크샵에서도 살아 돌아왔다. 그것 만으로도 많은 것을 용서할 수 있다고 자위한다.
그리고 쿠르드와 함께 하는 퍼실리테이션이 끝난 것이 아니다. 다시 그날의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을 기회가 또 있다. 머나 먼 쿠르드에서 만났던 아르빌 사람들이 11월 한국에 연수를 받기 위해 온다.
필자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필자는 또 한번의 도전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주) 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요청에 따라 지난 2013년 12월부터 KRG 기획부(Ministry of Planning)와 한국 정부의 공무원 교육훈련 시스템, 공무원 교육운영 경험과 know-how 전수를 통해 쿠르드 공무원교육원(KIPA)의 자율적 교육 운영과 역량 배양 및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3년 간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필자는 교수설계 체제팀의 일원으로 자문하고자 2015년 8월 7일~ 8월 23일 간 쿠르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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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파트너, 인피플 컨설팅
(nowhr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