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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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안 하는 것도 퍼실리테이션일까?
정혜선 2016-07-26

또다시 쿠르드에 왔다. 세 번째 아르빌 출장이다.
(나는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정부의 공무원교육원의 교수 요원 역량 강화’ 사업에 교수설계자로서 참여하기 위해 2개월 간의 일정으로 출장을 온 것이다.)
푹푹 찌는 듯한 삼복 더위를 뒤로 하고 한국을 떠나 이곳 쿠르드에 오니 50도가 훨씬 넘어서는 살인적인 더위가 나를 맞이해 준다. 평생 맛보지 못한 열기를 느끼며 ‘이런 날씨에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쿠르드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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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은 아르빌에 온 후 교육원으로 출근한 이틀째 날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날은 한국에서 연수를 받고 쿠르드로 돌아온 20명의 교수 요원들이 한국에서 온 내용전문가 분들과 각기 만나서 지금까지 개발된 내용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자문도 받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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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 자치정부의 공무원교육원의 교수 요원 역량 강화’ 사업에서 나의 역할은 리소스북의 개발이나 세션플랜의 작성 등 프레임워크를 제공하여 교수 요원들이 개발한 내용을 담아 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쿠르드의 교수 요원들은 한국에서 연수할 때 프레임워크에 대해 이미 다 익혔고, 내용이 채워져야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3주 남짓 그들의 내용 개발을 돕기 위해서 오신 한국의 내용전문가 분들께서 자신들의 역할을 최대한 충분히 하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가 나의 역할일 뿐이다. 즉, 그냥 현지 교수 요원들이 내용전문가 분들과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질문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하는 정도의 역할만 할 뿐이다. 사실 진행을 도와 주는 연구원들이 있어서 내가 개입할 여지도 별로 없다.

그래서 그냥 이러고 있다. 내 역할이 딱히 없음을 견디면서 누군가 필요로 할 때를 기다리며, 나를 그냥 여기 이 공간, 이 시간에 놓아둔다.
그러면서 의아해한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데 퍼실리테이션인가? 독자들이 ‘그렇다’ 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강의와 퍼실리테이션을 하면서 평소에 여백의 미와 Pause 를 강조해 오기는 했는데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는 Peak 다, 진수다. 이럴 때, 퍼실리테이터의 존재감, Presence 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인가?
다시금 한동안 초점을 맞췄던 ‘Servant Leadership’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리더십은 영향력인데 서번트라니… 하며 의아해 했던 시절이 있었다. ‘리더십이 영향력을 미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목표를 향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요구되는 혹은 해야 하는 행동을 하여 성과를 내는 일이라면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겉으로 드러나건 아니건 결과물을 내도록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은 것 아닌가?’ 하면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성과를 낸 그들은 누군가 있어서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쳐서 그들이 뭔가를 해낸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마음을 먹고 그 일을 해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멋지다. 이끌고 조정하고 얼르고 달래고… 이런 그림이 아니라 바람처럼 공기처럼 물처럼 자연스럽게 일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바깥 날이 더우니 에어컨 빵빵 틀어 놓고, 몽상에 사로 잡혀 횡설수설해 봤다.


주) 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요청에 따라 2013년 12월부터 KRG 기획부(Ministry of Planning)와 한국 정부의 공무원 교육훈련 시스템, 공무원 교육운영 경험과 know-how 전수를 통해 쿠르드 공무원교육원(KIPA)의 자율적 교육 운영과 역량 배양 및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교수설계 체제팀의 일원으로 자문하고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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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파트너
인피플 컨설팅
(nowhr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