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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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출신 퍼실리테이터가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이은애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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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러니까.. 뭘 하신다구요?” 같은 질문을 세 번째 하고 있었고, 그들은 또 다시 눈을 반짝이면서 내게 설명을 한다. “ “이게 00가 00 하기 쉽도록 OOO하고..그래서 저희가 ..”(중략) 


오랜만에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던 어느 금요일 오전.
열심히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두 개발자 앞에서 나는 창 밖으로 내리는 시원한 빗줄기 만큼이나
굵은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 나름 워크숍을 진행하는 퍼실리테이터로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지를 그날 깨달았다. 

 

소위 문과 출신인 나는 개발자들이 하는 이야기의 반도 못 알아듣고 있었다.
결국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에게 부탁했다.
“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시겠어요?” 


모 고객사에서 사내 벤처 아이디어팀들을 위한 스토리텔링 프리젠테이션 워크숍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상천외한 제품이나 서비스부터, 이런 기능이 있으면 어떨까 하고 한번쯤 생각했던 제품들을 제안한 팀들답게 참석자들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자신의 과제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에도 톡톡 튀는 피드백을 주고, 이를 기반으로 각자의 아이디어를

보완하여 최종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도록 기획된 코스인데, 몇몇 과제는 여러 번 설명을 들어도 당최 감이 안 잡히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결국 모든 팀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하여 시연을 하고 나서야,

준비된 동료 피드백 공간은 포스트잇으로 가득 넘치게 되었다.

프로토타입 발표 중 나를 진땀 나게 했던 그 두 개발자의 발표가 끝나자 누군가 

 “당신들이 무엇을 개발하고 있는지 3주가 지난 오늘에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라고 외쳤다.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던 그 제품 컨셉을 부직포와 종이, 자석으로 만든 시제품을 보고서야 이해한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묘한 안도감과 함께 이 좋은 아이템을 지금에서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대부분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말”이라고 하는 전달 방법은 서로 간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누수 되는 부분이 많이 생긴다.


참석자들 간에 정확한 소통이 필수적인 워크숍에서 그러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프로토타입 제작이 아닐까? 프로토타입 제작을 위해 머릿속의 아이디어들을 물리적인 세계로

끄집어 내고, 고객이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3D 제품이나, Story Board, Service Staging으로 시연을 하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발견하고 피드백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프로토타입은 완벽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빠르고 저렴하게,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프로토타입을 정성 들여 만들수록 애착이 커지고, 고객이나 동료들의 피드백에

방어적이 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기업과 디자인씽킹 워크숍을 진행하며, 퍼실리테이터의 입장에서 그 효과를 가장 크게

관찰한 것이 있다면 바로 프로토타입이 서로의 경험과 지식의 차이를 채워주고, 다양한 참석자 간의

소통을 쉽고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만나면 표정, 손발 모두 동원해서 바디 랭귀지로 소통하지 않는가? 

문과출신 퍼실리테이터와 개발자처럼 서로의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만났을 때 생각을 그림으로 쓱쓱

표현하고, 종이와 마커펜 테이프 등으로 아이디어를 뚝딱 만들어서 보여주며 소통하는 것이

일상화되는 멋진 일터를 상상해 본다.

- 이은애 수석 컨설턴트, 인피플 컨설팅